“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늘 돌이라도 무거울까/늙기도 서럽거늘 짐조차 어이 지실까.” –송강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늙는 것은 서럽다. 젊어서 죽도록 일해 자식들 키워내고 나니 어느덧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육신도 쇠약해져 몸이 마음 같지 않다.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그를 서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근력이 떨어지고 육신이 아파오지만 기댈 곳 없고 말벗도 없으면 인생의 황혼녘이 비참해지는 것이다.
늙어서도 스스로 운신하고 독립해 살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일까만 현실은 그렇질 못하다. 누군가 곁에서 지켜주어야 한다. 돌보아줄 사람이 자식이나 피붙이라면 좋겠지만 그 또한 그럴 수 없으니 천상 남의 손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보는 사람이 말이라도 통하는 동족(同族)이고 해주는 식사라도 입에 맞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거동이 불편할 때 부축해주는 일도 내 부모같이 정성껏 해주면 얼마나 고맙겠는가.
0…요즘 세상에 노부모 곁만 지키며 돌보아줄 자식을 기대할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직업적으로 운영되는 양로원에 부모를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돈 받고 기계적으로 노인들 수발을 드는 이들이라곤 하지만 노인들을 짐짝처럼 다루는 실상을 알고 보면 가히 충격이다.
뜻밖의 코로나 사태를 통해 양로원의 처참한 실태가 어느정도나마 바깥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바퀴벌레와 빈대가 기어다니는 너절한 침대에 노인을 방치하고, 대소변을 못 가리는 노인의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는가 하면, 밥먹는 시간이 지나면 아예 굶기고, 아프다고 약 좀 달라고 해도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치매 걸린 노인을 걸핏하면 육체적으로 학대해 피멍이 들게 하고 심지어 침대에 묶어놓고 몇시간씩 꼼짝 못하게 하는 악질 요양원 직원도 있다.
0…말이 좋아 장기요양원(Long Term Care)이지 노인학대시설에 다름 아니다. 한국말로 양로원이라 하면 어감이 좋지 않아 요양원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게 그거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시설에 갇힌 노인들은 ‘여기서 나가려면 죽는 길밖에는 없다’고 탄식한다.
양로원을 운영하는 영리단체(기업)는 이러고도 버젓이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아낸다. 온타리오의 경우 요양원 건립비에 더해 침상 1개당 매년 5만여 달러의 운영비를 대주니 그야말로 돈이 되는 장사다.
이런 영리단체는 대개 여러 개의 양로원 시설을 기업형식으로 거느리고 있는데,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수발드는 직원을 최소한으로 고용하기에 직원 한 명이 많게는 15명 이상의 노인을 맡는다. 이런 현실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0…코로나를 계기로 양로원의 일부 민낯이 드러나긴 했지만 외부로 밝혀지지 않은 비참한 사실도 수두룩하다. 특히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시설에 갇혀 지내는 노인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나위도 없다. 수많은 한인노인들도 그런 시설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한인노인들이 인생의 황혼녘을 보내는 양로원이 제대로 운영돼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 정성껏 수발을 들고, 음식도 입에 맞는 한식을 먹을 수 있으며, 여유있는 공간에서 안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노부모를 맡긴 자식들도 안심할 수 있을 터이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한인사회도 갈수록 노령화되고 있다. 수시로 원로들이 돌아가시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한인노인 시설이 더 많이 있어야 할 당위성이 제기된다.
0…지금 토론토의 유일한 한인전용 요양원은 ‘무궁화’ 한곳 뿐이다. 그나마도 자금난에 봉착해 타민족 기업에게 빼앗길 위기 일보직전에 한인들의 열화(烈火) 같은 노력으로 겨우 되찾게 됐다. 앞으로 무궁화요양원을 경영할 아리랑시니어센터는 정부의 최종 허가를 위해 막바지 노력중이다.
무궁화가 어떻게 세워진 시설인가. 동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합쳐져 이룩한 감동적인 열매다. 하지만 무궁화의 침상은 60개 밖에 안된다. 갈수록 연로해지는 한인사회를 감안할 때 양로원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무궁화에 입주하려고 기다리는 대기자만 200여 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은 기다리다 돌아가실 판이다. 제2의 한인요양원이 절실한 이유다.
0…이런 실정에서 제2의 한인요양원을 짓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특히 건물설립에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인 부지문제가 거의 해결된 상태이기 때문에 성공가능성이 아주 높다. 선뜻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측은 토론토 서북부에 있는 '기쁨이 충만한 교회(담임목사 양요셉)'. 그야말로 한인사회의 구세주를 만나 셈이다.
다만 이 교회에 요양원을 짓기 위해서는 현재 공업지역(Industrial Zone)인 지목(地目)을 주거용지로 변경해야 한다. 여기엔 토론토시의 승인이 필요하며 그래서 한인사회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즉 온주정부에서도 적극 추진중인 장기요양원을 지을 수 있도록 시에서 도와 달라는 것이다.
때마침 오는 6월 2일에는 온주총선이 실시된다. 따라서 이 기회에 정치인들을 잘 활용해 반드시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도록 해야 한다.
0…늙어가는 한인사회, 양로원 문제는 곧 나의 일이다. 머지 않아 내가 들어가 살 곳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락한 시설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내가 들어갈 집, 내가 짓는다는 각오로 서명운동에 참여하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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